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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금융’ 지적 이후…연체 관리의 딜레마

포용금융은 연체로 흔들린 개인이 경제생활의 궤도로 다시 올라설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금융의 문턱을 낮추려는 선의로 출발했지만, 성실상환자의 허탈감과 신용도별 금리 역전 같은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연체를 단순히 '모럴 해저드'로만 볼 수도 없다. 개인의 상환 실패에는 경기, 소득 구조, 금융 접근성 등 다양한 요인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복잡한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단순한 메시지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법무법인의 광고는 "빚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문구로 제도를 축약하고, 온라인에서는 채무조정 사례가 마치 '리스크 없는 성공담'처럼 회자된다. 정책 홍보조차 제도의 설계와 한계를 설명하기보다는 결과만 부각하면서 포용금융의 본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제도와 시장, 그리고 정보 환경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지금의 포용금융이 어떤 언어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차분히 짚어본다.


금융은 상환이 이어지는 동안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상환이 중단되는 순간, 거래는 관리로 전환된다. 연체 시점부터 금융은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고신용·저신용 간 금리 구조를 두고 '잔인한 금융'이라고 지적한 것도, 연체 이후 부담이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연체 관리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지, 또 다른 부담 전가인지는 관리 방식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20일 '신용평가 체계 전면 개편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첫 회의를 열었다. 연체 이후 관리 단계로 진입하는 차주가 늘어나는 배경을, 단순한 상환 실패가 아니라 연체 이전 정상 거래 단계에서의 신용 접근성 약화와 연결해 점검하기 위한 취지다. 


신용점수는 오르는데, 대출 문턱은 높아졌다


은행연합회와 금융권 자료를 종합하면 최근 1년 사이 주요 은행의 가계 신용대출 차주 평균 신용점수는 930점대 중반에서 940점대까지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에서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감소 흐름을 보였다. 신용점수는 오르는데 실제 은행 창구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차주는 줄어드는, 이른바 '점수 인플레이션과 접근성 저하'의 괴리가 동시에 나타난 셈이다.

이 현상은 중신용자 구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신용평가사 기준 700~900점대 차주 상당수가 은행권 신용대출에서 밀려나 담보·보증 대출로 우회하거나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2금융권 신용대출 금리는 같은 신용점수대 기준으로 은행권 평균금리(연 4.5~6.0%)의 2~3배 수준인 연 14~20%에서 형성돼 있다.

이자 부담이 커질수록 상환 여력은 약화되고, 상환 여력의 약화는 다시 연체 위험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체는 갑자기 발생한다기 보다 그 이전 단계에서 거래 통로가 점차 막히며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며 "정상 거래에서 배제된 차주가 결국 관리 대상으로 전환되는 경로가 구조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해 금융위는 TF를 통해 신용점수 상승과 대출 접근성 하락 간의 괴리, 중신용자 구간의 '금리 단층'과 '대출 공백' 문제를 핵심 의제로 올렸다. 신용거래정보부족자(신파일러)·소상공인·중·저신용자를 포괄하는 새로운 평가 모델 방향을 상반기 중 제시해, 은행권과 신용평가사의 모형 개편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연체는 '도덕'이 아니라 '비용'의 문제


연체가 발생하는 순간 금융의 판단 기준은 달라진다. 금리를 조정해도 상환 능력이 회복되지 않는 구간에 진입하면, 금융은 신규 거래 확대보다 기존 채권을 어떻게 회수·조정할지로 초점을 맞춘다. 연체가 장기화될수록 채권 회수율은 급격히 낮아지고, 금융회사와 보증기관, 공적 기금은 물론 실업 증가와 복지 지출 확대 등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빠르게 늘어난다.

이 같은 인식은 정책 기조에도 반영돼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대국민 발언을 통해 "고신용자에게는 저금리로 장기·고액을, 저신용자에게는 고금리로 단기·소액을 빌려준다"며 "금융이 가장 잔인한 영역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연체와 부실을 개인의 실패로만 방치할 경우, 금융 실패가 실업·복지 지출 확대·비공식 금융 확산 등으로 전이돼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는 문제의식이다.

민간 금융권 역시 연체 이후를 방치하기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금융지주들은 상생·포용금융 계획을 통해 연체 이전 조기 컨설팅과 취약차주 모니터링, 연체 이후 채무조정 연계와 재기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연체 이후 구간을 단순한 회수 실패가 아니라 관리와 회복 가능성을 함께 판단하는 단계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연체 이후 작동하는 대표적 관리 장치는 채무조정 제도다. 신용회복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개인 채무조정은 자동적 구제와는 거리가 멀다. 신청인의 재산·소득·채무 구조 검증, 외부 전문가 심의, 채권금융회사 과반 동의 등 다층적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제도의 목적은 채무를 일괄 면제하는 데 있지 않고, 무질서한 추심과 장기 부실로의 전이를 차단해 회수 가능성과 경제활동 복귀 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데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채무조정은 상환 책임을 없애주는 제도가 아니라, 연체 이후 관리 실패로 발생하는 더 큰 비용을 막기 위한 장치"라며 "상환 구조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차주 개인뿐 아니라 금융회사와 사회 전체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체 관리의 '왜'는 합의…문제는 '어떻게'

이처럼 연체 이후 관리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관리의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금리에 대한 직접 개입을 둘러싼 우려와, 정책금융을 통한 역할 분담 필요성이 그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직접적인 금리 인하 요구나 대출 확대 압박은 단기적으로 차주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은행의 리스크 프리미엄 산정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잠재적 부실 가능성이 높은 차주에게 과도한 유동성이 공급되면 경기 하강 국면에서 금융 시스템 안정성이 동시에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체 이후 관리는 필요하지만, 해법은 금리에 대한 직접 개입이 아니라 정부 보증과 정책금융을 통한 구조적 역할 분담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신용점수는 기존 빚을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에 따라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어 고신용자가 반드시 자산이 많고, 저신용자가 반드시 가난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포용금융의 목표가 취약 계층 보호라면 신용등급이 아니라 소득·자산·고용 상태 등 종합적 취약성을 기준으로 선별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제언했다.

연체 시점은 정상 거래의 끝이자 관리의 시작이다. 이 전환을 신용점수의 문제가 아니라 취약성과 사회적 비용의 문제로 이해할 때, 포용금융은 특정 차주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용을 예방하기 위한 관리 전략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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